들어가며

'김지운' 감독의 '거미집'을 보고 왔습니다. 이야. 오랜만에 호불호 씨(?)게 갈릴만한 영화가 나왔네요. 좋아할 사람은 엄청 좋아할 것 같은데, 또 싫어할 사람들은 싫어할. 아니, 싫어한다기 보다 물음표를 지을 것 같은? 뭐랄까. 올 추석 영화 중 가장 의외의 톤을 가진 영화라고 할까요? 온 가족의 영화라고 하기에도 애매하고, 그렇다고 별로인 영화는 절대 아닌 것이. 혹시 '거미집' 긴가민가해서 볼까 말까 고민하시는 분. 영상 잘 트셨습니다. 이번 영상에서 선택의 길라잡이를 해드릴 테니까요. 요번 추석 선택과 집중 확실히 준비해 보시죠. 아, 물론 영화를 보고 오신 분들 중에 대체 이 영화 뭐지? 하실 분들 계실 텐데, 그분들께도 어느 정도 답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아이고. 시작부터 꿈이 원대합니다잉. 지체 없이 바로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참고로 저는 이번 추석 영화 중 가장 좋게 봤써여!)
김기영 감독을 추억하며

이번 영화는 여러모로 기시감이 있는 영화입니다. 주인공 '김열' 감독을 연기한 '송강호' 배우의 묘사라든지, 영화 속에서 제작되는 흑백 영화의 스타일이라든지. 누가 봐도 작가주의의 상징과도 같았던 고 '김기영' 감독을 모티브 한 것으로 보여요. 아이러니하게도 유족의 상영 금지 소송까지 이어지긴 했었죠? 제작진은 동일 인물이 아니라며 완만하게 해결되기는 했는데, 이건 누가 봐도 모티브는 맞는 것 같습니다. 혹시 몰라서 지금부터 감독 이름은 되도록 말하지 않을게요. 영상 없어지고 잘릴까 봐 몰라서..
영화는 1970년대, 영화를 포함해 문화와 관련된 모든 것을 검열 당하던 시절을 배경으로 합니다. 성공적인 데뷔작 이후 악평 만을 받아온 '김열' 감독. 그는 스스로의 재능을 확신하지만, 반대로 지지부진한 작품들 탓에 재능을 의심하기도 하는데요. 촬영이 끝난 영화 '거미집'의 결말을 바꾸면 걸작이 완성될 것이란 꿈을 믿고. 여기서 꿈이 진짜 꿈이에요. 잠들면 꾸는 꿈. 그렇게 감독은 통과하지도 못한 심의를 무시하고, 다시 한번 스탭과 배우들을 불러 재촬영을 시작합니다.
줄거리만 보고선 뭐 그냥 무난 무난한 영화판 이야기구나 싶으실 거예요. 하지만 그 당시의 시대상과 함께 모티브가 된 인물(?) 아.. 이름을 말 안 하니까 되게 불편하네..ㅋㅋ 암튼 그 인물의 뒷이야기를 알고 영화를 본다면 훨씬 더 흥미롭고 입체적으로 관람하실 수 있습니다.
일단 1970년대가 퇴폐, 문란 등 ‘반사회적/반민족적’ 문화콘텐츠에 대한 검열과 금지가 일상인 유신 시절이었잖아요. 대중이 진실이라고 믿길 바라는 내용을 추가하거나, 또 그에 반대되는 내용은 철저히 삭제하던 시대. 예술이 예술일 수 없고, 프로파간다적 사상 주입이야말로 올바른 가치가 될 수 있었던 시대. 영화는 이런 시대 상을 꼬집기라도 하듯 기가 막힌 블랙코미디로 저격합니다. 저는 그게 되게 좋은 거예요. 뭐랄까. 멀리서 보면 비극인데, 가까이서 보면 희극 같았다고 할까? (아니, 실제로 영화가 웃기기도 웃겨요. 막 '송강호' 배우, '오정세' 배우. 얼마나 웃긴 배우들입니까?)
영화에서 느낄 수 있는 인간의 인생

이 영화가 인물을 모티브로 만들었지만, 저는 결국 이 영화는 감독 본인의 이야기 내지는 무언가를 제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영화 속에는 극중극 장면들이 많이 등장해요. 다시 말해 영화 속에서 찍은 영화가 상영되고, 그걸 우리가 보는 거죠. 영화 속 감독 '김열'은 걸작을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에 짓눌려 있습니다. 이건 비단 대중들에게 인정을 받아야 한다는 것도 있겠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건 스스로 재능이 있음을 확신하고, 안도하고 싶은 거겠죠. 영화 속 영화는 흑백으로 펼쳐지고, 검열을 아득히 벗어난 예상치 못한 이야기는 실제 관객들은 물론 영화 속 배우들과 스탭들까지 당황케 합니다. 영화 속에서 하나같이 말하죠. 이게 당최 무슨 이야긴지 모르겠다. 감독 스스로도 이걸 이해하면 이상한 거라 말을 합니다. 걸작이 되기 위해선 이래야 해. 세상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이야기. 그게 감독의 강박에서 온 허상일지, 진정 걸작으로 향하는 길일지 그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예상할 수 없는 굴레 속에서 검열하려는 자, 제작하려는 자. 어쩌면 이 영화는 성공하지 못한, 아니, 성공의 맛에 근접해 본 패배자들의 이야기 같기도 합니다. 거대한 벽 앞에서 어떻게든 꿈을 이루기 위해 불로 뛰어드는 한 마리의 무모한 나방처럼. 영화라는 게 다양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군상들이 하나의 의견을 취합해 내놓은 거대한 예술 혹은 거대한 똥이잖아요. 저는 이번 영화가 '영화'라는 주제를 빌려,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을 말하고자 한 것이라 생각해요. 영화를 제작한다는 것.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 끝없는 좌절과 고난 속에서 그 무엇보다 아름다운 미학을 피우기 위한 부단한 노력.
아이고. 좀 딥하게 들어가 버렸네요. 개인적으로 이번 영화를 재밌게 보기 위해선 1970년대 문화 검열에 관한 이야기를 알면 더 와닿으실 것 같고요. 또 하나는 그 모티브가 된 그 감독님ㅎㅎㅎ 조금만 검색하면 그분 비범한 이야기가 많거든요? 기묘하기도 하고 괴이하기도 하고. 이번 영화가 불에 관한 묘사 제법 등장합니다. 그 또한 인물과 연관해 검색을 쪼꼼만 해보시면 아주 흥미롭게 보실 수 있을 겁니다. (아따.. 창작은 괴로운 겁니다. 리뷰도 괴롭습니다.. 이게 어렵네여..)
엔딩에 관하여

영화의 엔딩에 관해서도 호불호가 있을 것 같아요. 다소 후반부로 갈수록 힘이 빠진다는 부분은 저도 동감을 합니다만, 이러한 후반부와 엔딩조차 다분히 의도적이었다고 봅니다. 크레딧이 올라가고 비슷한 느낌의 영화들을 생각해 봤는데, 음..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헐리우드'도 생각났고요. 부분적으로는 '카메라를 멈춰 선 안 돼!'나, '바빌론'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세 영화 모두 영화라는 매체에 대한 허무주의와 비판, 그를 뛰어넘는 무한한 사랑과 헌신이 보이는 영화들이잖아요. 이번 영화 '거미집' 또한 그러한 느낌을 많이 받았던 것 같습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뜬금없이 느껴질 수 있는 극중극의 결말 역시 저에게는 시대를 관통하는 저항과 예술에 대한 노력으로 보였거든요.
누군가는 뭐야? 개뜬금없네? 하실 수 있는 결말에서도. 저 같은 소수의 누군가들에겐 큰 감동과 여운을 줄 수 있다는 점을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영화 속에서 평론에 비유하여 '예술가'와 '예술가가 되지 못한 예술가'를 비교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아마도 프랑스의 작가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말을 인용한 것 같은데요. 앞서 제가 계속 이야기했던 성공한 사람, 실패한 사람, 그리고 그 사이를 좌지우지했던 사람들을 생각하며 대사를 곱씹는다면 좀 더 영화가 말하고자 했던 메시지에 접근하실 수 있을 겁니다. 개인적으로는 극장이 아니더라도, VOD라도 꼭 한 번은 관람해 보셨으면 하는 영화입니다. (오늘 근데 이야기 왤케 무거운 것 같징..? 오늘 내 뭐 앞선 영화들이 너무 가벼웠던 건가?)
마치며

정리하겠습니다. '거미집'. 추석영화라는 타이틀로는 이질감이 있긴 하나, 소수의 매니아가 생길 것 같은 영화에요. '김지운' 감독 영화답게 대사맛도 좋고, 유머의 타율도 좋고, 비주얼과 스타일, 배우들의 연기 모두 좋습니다. 지금 당장보다는 조금의 시간이 흐르면 재평가가 되거나, 근근이 오래오래 화두에 오를 수 있을 만한 작품이라 생각하는데.. 개인적으론 이번 추석 영화 중 가장 추천할 만한 영화이지만, 이 또한 너무 제 취향이 반영되어 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추천드리긴 어려울 것 같아요. 혹시 너무 평면적이고 뻔한 영화 싫다. 가족, 친구와 함께 독특하고 색다른 토론을 하고 싶다. 그렇다면 나쁘지 않은 선택이 되실 겁니다. 일단 저 같은 경우에는 추천이에요. 저는 정말 재밌었습니다. 오늘 리뷰도 재밌게 봐주셨다면 구독과 좋아요 한 번씩 부탁드리고요. 저는 또 새로운 영화로 돌아오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