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수제왕국
작성일
2023. 11. 21. 20:55
작성자
닥터수제

 

들어가며

어린 시절 우연한 계기로 본 뒤, 지금까지 제 인생 공포영화로 자리 잡은 영화가 있습니다. 갑툭튀가 아닌 스멀스멀 올라오는 기괴한 공포가 일품인 오컬트 영화 ‘엑소시스트’. 이 영화가 73년도 작이에요. 와.. 73년? 이후에 후속작들이 무려 네 편이나 나왔는데, 정말이지 하나하나가 뭔 똥구멍 같은.. 그리고 시간이 흘러 2023년. 시리즈 여섯 번째 작품 ‘엑소시스트 : 믿는 자’가 개봉했습니다. 아니 근데 이거 시리즈가 예전만 못한지 많이들 개봉하는 줄도 모르시더라고요..? 그것도 그런 게 해외 평이 참 참혹한 상황입니다. 이걸 봐야 되나. 말아야 되나. 제가 또 미취학 아동 수준의 심장을 가진 쫄보지 않습니까? 에라 모르겠다. 나도 이제 으른이야. 기어코 저는 이 두렵고 거대한 똥을 맛보기로 했습니다. 오늘은 ‘엑소시스트 : 믿는 자’ 과연 어떤 영화였는지, 무서운지, 똥인지, 아니면 지렸는지. 모든 것을 총정리해서 여러분들께 가이드 해드리겠습니다. 빠르게 출발하시죠. (근데 아무리 똥이라 해도 좀 쫄리긴 쫄린다..)

 

쫄보가 극장 대관한 썰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이번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간 쫄보의 썰부터 들어보시죠. 이런 시시껄렁한 이야기 말고 영화에 대한 이야기가 듣고 싶으신 분들은 약 1분 뒤로 넘기시면 되는데, 이왕 영상도 클릭해 주셨는데 제발 좀 제 tmi 좀 들어주십쇼.ㅜ 나름 리뷰의 감정선에 도움이 된다랄까요? 암튼 제가 며칠 전부터 '엑소시스트'를 볼까 말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영화가 별로일까 봐 그런 게 아니라, 혹시 보러 갔는데 아무도 없으면 어쩌지? 안 그래도 제가 평일 오전에 영화를 많이 보거든요? 그때는 정말 사람이 없어서 대관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미리 예매를 해두고 계속해서 좌석표를 봤어요. 이틀 전에도 나 혼자.. 하루 전에도 나 혼자.. 에이.. 설마 당일에 예매해서 보시는 분 한 분이라도 계시겠지! 세상에나. 그날 또 연달아 봐야 하는 '블루 자이언트' 시간표 고려하다 보니 돌비 애트모스관이네요?? 으어. 이거 미치겠다. 설마 나 혼자 사운드 빵빵한 상영관에서 질질 지려가며 공포영화를 봐야 하는 건가? 그렇게 슬픈 예감은 현실이 되었고, 저는 111분에 달하는 러닝타임 동안 홀로 극장에 갇혀있어야만 했습니다. Tmi 끝. 지금부터 영화에 관한 이야기 시작합니다. 무섭겠죠..?

 

예상을 벗어난 공포..

결론부터 말하겠습니다. 하............안개도 안 무섭습니다. 제가 멀쩡하게 살아온 정도라면 여러분들은 극장에서 잠드실 수도 있을 정도일 거예요. 혹시 이번 영화를 공포 요소 때문에 관람 예정이신 분들이라면 그냥 그 마음 접으시고 73년도 작 ’엑소시스트‘를 보시길 권하고 싶습니다. 보셨다고요? 그러면 2시간을 버신 겁니다. 리뷰 끝. 이번 영화를 보고 느낀 핵심적인 두 가지. 일단 첫 번째. 안 무섭습니다. 저 쫄봅니다. 근데 1도. 한 개도. 극장에 혼자였는데도 전혀 무섭지가 않았습니다. 두 번째. 영화 자체가 많이 별롭니다. 무섭진 않더라도 작품의 만듦새나 메시지는 좋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기대 내려놓아야 합니다. 이번 영화는 과거 작품을 복제하는 것에 지나지 않은데, 그 복제마저 시원찮을 수준입니다. 무슨 거창하게 시리즈가 부활할 것처럼 떠들어 대지만, 그 끝은 초라하다 못해 허무한 이도 저도 아닌 수준의 영화였어요. 무섭지도 않은데, 재미까지 그저 그렇다. 이거이거 초유의 사태입니다. 제 입에서 무섭지가 않은 공포영화라니.. 자, 천천히 이야기 풀어볼게요. (분노 좀 삭히고~)

이번 영화는 과거의 작품을 보신 분들이라면 익숙하게 느끼실 만큼 유사한 전개로 흘러갑니다. 그 때문인지 솔직히 초 중반까지는 분위기가 꽤 괜찮았어요. 흑인 주인공의 트라우마와 부성애의 개연성도 어느 정도 잡고 가고요. 두 아역배우들의 설정 자체도 요약이 있을지 언정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없었습니다. 전반적으로 배우들의 연기도 좋은 편이라, 영화에 대해 은근한 기대감을 가지게 돼요. 어떻게 빙의가 될까? 또 구마 의식은 어떻게 이루어질까? 하지만 놀랍게도 영화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악마가 몸에 깃들어 발견되는 시점부터 영화는 휘청거리기 시작합니다. 아니, 솔직히 뭐 거의 누워버린 느낌?

영화는 과거에 등장했던 설정과 장면들을 오마주 하며 그저 그런 긴장감을 주려고 해요. 여기서 '그저 그런 긴장감' 중요해요. 여기에는 점프 스퀘어, 흔히 말하는 갑툭튀 장면들도 포함되어 있는데, 음... 제가 진짜 호들갑이 심하거든요? 근데 단 한 장면에서도 놀란 장면이 없습니다. 너무나 뻔하게 예상되기도 하고, 또 그 연출 자체도 심심하기 그지없어요. 이 정도면 놀라겠지? 무섭겠지? 웃기고 앉았네. 하품이 다 나오더라. 심지어 그런 장면들의 빈도가 되게 낮기도 해서 이게 서사에 큰 무게감을 두고 드라마로 만들려고 했나 의심마저 들게 했습니다. 아, 그리고 또 '엑소시스트' 시리즈 하면 그 기괴하고 괴랄한 장면들이 많잖아요. 목 돌아가고 막. 스파이더 워크도 하고 막. 구토나 자해 같은 것도 하고 막. 이번 영화도 몇몇 스틸컷이나 포스터 보면 소름 끼치잖아요. 정말이지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어우~ 널널하게 감당하더라고요. 나 많이 성장했나? 나이 먹었나? 착각을 하기도 했지만, 그게 아니라 확실히 그런 분장과 연출에 힘이 많이 빠져있기도 했고, 장면 자체의 숫자가 적기도 했습니다. 이 전체를 종합해 보면 이번 영화는 갑툭튀도 적고, 잔혹한 장면도 적고, 공포도 적고. 아니 이게 무슨 공포영화야 그럼ㅋㅋㅋ (그래도 영화가 나 공포 잘 보는 사람으로 자존감을 높여줬네..)

 

기존 영화와 같은 세계관

이번 영화는 1편의 시점에서 시간이 흐른, 다시 말해 같은 세계관을 이어가고 있습니다만, 리부트 작이라고 해도 무관할 작품이에요. 한 명의 아이에게 빙의 된 것이 두 명으로 늘었고, 모성애의 초점이 부성애로 변경되는 변화를 주기도 했습니다만, 참 이러한 변경점들이 그저 껍데기에 불가하다는 점이 크게 아쉬웠습니다. 언뜻 보면 좀 새로워지려고 한 것 같거든요? 근데 이게 무슨 캐릭터 스킨 바꿔서 플레이하는 게임 마냥 별 영향 없이 옛것을 답습하는 걸로 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비슷한 느낌을 받았던 영화가 있어요. ‘스타워즈 에피소드7 : 깨어난 포스’. 그 영화가 딱 그랬거든요? 올드팬들에게는 추억을. 입문자들에겐 신선함을. 근데 이 영화는 둘 다 달성하지 못해요. 오마주들도 많이 보이고, 과거의 캐릭터 ‘크리스 맥닐’을 그대로 가져와 배우까지 똑같이 캐스팅하긴 했는데, 하나같이 1편에 미치지 못합니다. '깨어난 포스'는 그 특유의 뽕이라도 차게 했지, 이건 뭐 무섭지도 않고, 시리즈가 도달하고자 했던 공포의 근원에 대해 제대로 이해도 못 한 듯 보였습니다. 기껏 데려온 ‘엘렌 버스틴’ 배우의 활용 역시 그냥 흐지부지 추억 팔아먹기예요. 그냥 추억의 배우 데려와서 활용은 하지 못한 채 허무하게.. 그녀가 없어도 전혀 이야기에 지장을 주지 않는..

툭 까놓고 말해서 ‘엑소시스트’ 1편의 공포와 매력이 무엇이었나요? 저는 인간과 악마의 관계, 믿음이라는 신념, 그 관계의 모호함과 아이러니함이라 생각하거든요.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 간단하게 예를 들자면 신부님이 종교에서 금기시되는 행동을 통해 한 생명을 살리는데, 그것은 과연 용서받을 수 있는 행위인가? 인간을 구했다고 한들 잘못된 방법이라면 지옥으로 떨어지는 것인가? 뭐 그런 것들이 영화를 곱씹게 하는, 명작 반열에 오르게 한 핵심요소라고 생각합니다. 근데 이번 영화는 그런 게 없어요. 인간과 악마의 대결은 심심하기 그지없지, 관객이 생각을 하게끔 하는 지점 없이 그냥 보여주고자 하는 것을 보여주고 사건을 종결시킵니다. 영화의 클라이맥스라고 할 수 있는 장면들에서조차 그 과정이 너무 허술하고 허접해서 이거 뭐야. 못 만든 넷플릭스 시리즈야? 나 뭐야? 나 공포영화 보는데 왜 화내고 있는 거야? 아이고.. 오늘 리뷰 초장에 왜 극장 간 썰을 먼저 풀었는지 아시겠나요? 그렇게나 심장을 부여잡고 덜덜 떨면서 들어갔는데, 어느덧 화를 내게끔 하는 이 어마어마하고 무시무시한 영화. (그래.. 생각해 보니까 어떤 의미에서는 공포 맞다. 이것도 공포지..)

 

마치며

에라이~ 정리하겠습니다. ’엑소시스트 : 믿는 자‘. 모든 것이 1편의 그것을 답습하고 있지만, 시각적인 공포도 영화가 주고자 한 메시지도 약한 영화였습니다. OTT 서비스로 봤다면 그나마 좀 나았을 것 같은데.. 아 모르겠습니다. 이게 좀 찾아보니까 앞으로 새로운 시리즈를 만들기 위한 리부트 격의 작품인 것 같은데.. 음. 그냥 안 했으면 좋겠어요. 추억은 좋은 추억으로. 아~ 어린 시절 부모님 옆에 꼭 붙어 1편을 보던 그때가 그립네요. 집에 전화 한 번 드려야겠습니다. 이번 영상 이어서 바로 '블루 자이언트'의 리뷰가 업로드되니까요. 꼭 구독과 좋아요 한 번씩 부탁드리면서, 얼른 영상과 함께 돌아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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